수요일, 7월 24, 2024
사람들3·1운동 105주년…애국지사 김상후 선생 기린다

3·1운동 105주년…애국지사 김상후 선생 기린다

전라남도 광양 지역 3·1운동을 이끌었던 애국지사 금호(錦湖) 김상후 선생의 유품 전시회가 오는 3월 8일까지 광양역사문화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3·1운동과 관련한 김상후 선생의 판결문과 수형인명부를 비롯해 선생이 생전 소장했던 교지, 소치 허련의 그림, 매천 황현의 글씨 등 서책 100권과 기타 유품 25점을 선보인다. 

올해 서거 80주년을 맞이한 김상후 선생은 1870년 광양군에서 출생했다. 댁은 조선 말기 유반(儒班)으로 유명했던 가문이다. 대대로 효자와 충신이 배출돼 조정에서 정려(旌閭)를 내리기도 해 마을에서는 덕문복가(德門福家)라 칭찬했다.

선생은 1890년 21세 나이에 순릉참봉(順陵參奉)에 임명됐다. 그즈음 일본제국주의의 조선 침략이 가속화되자 광양에서 금호학숙을 설립해 애국계몽운동을 주도, 후진 양성을 통해 국권을 수호하고자 했다.

1910년 경술국치(國權被奪) 이후 김상후 선생은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자금을 마련하고 서울, 광양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 시기 일제의 잔인한 식민 통치에 반발하는 3·1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거국적으로 일어났다. 

선생은 광양군민 1000여 명과 광양읍 빙고등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광양시장까지 거리 행진에 나섰다. 친일 인사들의 고변(告變)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힌 선생은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하지만 이후에도 선생은 일제에 굴하지 않고 국권 회복을 위해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그러다 1934년 광주학생독립운동 배후자로 지목돼 전 재산을 몰수당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독립을 보지 못한 선생은 1944년 75세 나이로 서거했다. 2002년 국가유공자로 등록돼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그는 보장된 부귀영화를 초개같이 버리고 민족의식 고취와 농민계몽운동, 부녀자 야학 활동과 육영사업, 광양 지역의 독립운동과 상해임시정부 독립군 군자금 지원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금호 김상후 선생
금호 김상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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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

  1.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버린 수많은 분들 앞에 묵념과 감사를 올립니다. 후세에 이름이 남은 분들도 계시지만 이름 석 자 없이 스러져간 순국 선열 앞에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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