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우리 민족이 산을 좋아하고 숭상한다는 사실은 각종 학교의 교가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사봉의 힘찬 정기 우러러 받아…” 유치서교 교가의 시작 부분입니다. 유치중 교가는 또 “가지산 보림문화…” 이렇게 시작합니다. 광주로 전학 갔더니 거기 중학교 교가는 “보아라 미더운 무등산 아래…” 이렇게 시작되었고, 고등학교 때는 “무등산 높이 뜨는…”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마치 가사의 첫머리에 산이 들어가지 않으면 아예 교가로 채택하지 말라는 무슨 법이라도 있었던가 하는 싱거운 생각마저 들 정도로 교가 앞부분에는 천편일률적으로 산 이름부터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한치 마을 서쪽에 위치하여 장흥군 유치면과 영암군 금정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국사봉은 가지산, 수인산과 더불어 유치면의 3대 진산(鎭山)이라 할만합니다. 그중 가지산은 산 아래 천년고찰 보림사를 품고 있어 ‘가지산 보림사’ 자체가 하나의 고유명사이니 유명세가 있는 곳이고, 수인산도 수인산성이라는 중요한 역사 유적이 있고 상당한 기암괴석과 볼만한 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있어 나름의 유명세가 있는 듯한데 국사봉은 두 산만큼 유명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가지산 509.9m, 수인산 561m인 데 비하여 국사봉은 614m이므로 높이에서만큼은 국사봉이 세 산중에서 으뜸입니다. 국사봉은 정상부에 4~5개의 봉우리가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는 아담한 분지를 이루고 있는데 2개의 봉우리에만 바위가 살짝 돌출되어 있을 뿐 그 일대가 모두 억새밭입니다. 전국적으로 억새가 유명하다는 여러 산들이 있지만 나는 국사봉 억새의 아름다움도 다른 산에 견주어 크게 뒤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억새밭인 국사봉도 일제 강점기 말기 무렵까지는 대부분 울창한 소나무 숲이었다고 합니다. 그 무렵은 국사봉뿐만 아니라 한치 주변에 소나무 숲이 많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 화순군 청풍면 일대에 문중 산을 가지고 있던 어떤 문중의 계책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부터 적어 온 그 문중의 계책에 ‘송추(松楸)대금’이라는 잘 쓰이지 않는 어려운 단어가 자주 나왔습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송추’라는 말은 ‘산소 주변에 심는 나무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인데 주로 소나무나 가래나무가 주종’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위 문중의 계책에 나오는 ‘송추대금’은 ‘문중 선산의 소나무 가지치기를 해서 땔감으로 판 돈’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송림(松林)을 가지고 있으면 가지치기만으로도 땔나무를 팔아 쏠쏠한 수입원이 되던 과거의 일입니다. 이렇게 그 문중의 선산이 일제 강점기에는 우거진 송림이었던 것처럼 한치의 여러 산들 역시 그러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일제 말기에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이후 기름이 부족하여 기름 대용을 만들기 위해 송진까지 채취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제가 그 짓을 시작했을 무렵 놀랍게도 한치 일대에 송충이류의 벌레가 창궐하여 그 좋던 소나무들이 거의 고사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한치에 송충이가 창궐했다면 적어도 유치면 일원 혹은 조금 더 넓게 장흥군이나 인근의 화순군, 영암군, 보성군, 강진군 등 남부지방 일대에 그런 현상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런 현상을 보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일본 놈들 시대가 얼마 못 가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되지 않아서 해방을 맞이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제 말기에 송충이로 인해 엄청났던 한치 주변의 송림이 대부분 사라질 때 국사봉 정상부의 송림도 함께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국사봉은 이후로 몇 년에 한 번꼴로 큰 산불까지 겹쳐서 일반 잡목조차 자라지 못하고 결국은 지금처럼 억새밭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6·25 동란 때는 빨치산들이 국사봉 쪽에 자주 출몰하자 작은 한치 쪽의 ‘뒹기산’이라는 곳에서 국사봉을 향해 수시로 포격까지 했다고 합니다. 한치 주변의 산에는 아직도 몇백 년은 너끈히 넘을 것 같은 멋진 적송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데 일제 강점기 송충이의 피해에서 겨우 살아난 소나무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국사봉의 정상 부근 조금 못미친 지점부터 다시 소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국사봉 주변의 억새는 급격하게 사라지고 관목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또 세월이 흐르면 국사봉도 억새밭에서 소나무 숲으로 탈바꿈하게 될까요?
어떤 자연 다큐를 보니 참매 둥지에 싱싱한 솔잎이 놓여 있었는데 방충 효과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소나무 숲에 다른 식물들이 쉽게 자라지 못하고 심지어 솔잎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잔디조차도 잘 자라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런 것을 보면 소나무가 뿜어내는 화학성분이 굉장히 강한 듯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소나무는 정이 박하여 곁을 잘 두지 않는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우리나라의 산에는 역시 적송이 우거진 송림이 군데군데 있어야만 또 한국적인 산 같은 맛이 나는 법이니 국사봉의 멋들어진 억새밭이 다시 송림으로 바뀐다 해도 섭섭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오~
희한하네요
다시 송림으로 바뀌길 바래봅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산은 변함없는 넉넉함과 너그러움으로 우리를 품어 주기에, 변덕스럽고 신산한 세상살이에 지칠때 쯤 찾아가 안기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산이 품은 나무와 호젓한 산새의 날개짓, 영원과 잇대는 듯한 산 줄기와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산처럼 고요하고 묵직한 문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올해 꼭 국사봉에, 그 언저리에라도 가 보리라!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