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어디를 보나 무더위 속에서도 녹음이 우거져 있습니다. 자연을 인생에 비유하자면 이 시기는 청년에서 장년으로 나아가는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름철의 가로수, 공원이나 공공기관, 학교의 조경수 중 느티나무에는 유독 눈길이 더 갑니다. 한치의 사장나무가 느티나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치뿐만 아니라 유치면 마을의 사장나무들은 느티나무가 주종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이 느티나무를 ‘귀목나무’ 혹은 ‘기목나무’라고도 불렀습니다.
왜 마을의 휴게터를 ‘사장’이라고 부르는지 유래를 알지 못하여 어떤 이에게 이 말을 했더니, ‘활터’를 뜻하는 ‘사장(射場)’일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은 사장을 빼고 이야기가 될 수 없습니다. 사장은 어린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어른들의 휴식터였습니다. 논둑을 베거나 꼴을 베는 등으로 잠깐잠깐 부모님들의 일손을 거드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여름방학의 대부분은 사장과 냇가에서 소일했습니다. 그리하여 여름방학 동안 사장나무 그늘 아래서 아이들은 쑥 커서 2학기를 맞이했을 것입니다.
사장나무 그늘 아래서 하던 놀이들도 참 많았습니다. 땅따먹기, 비석치기, 팔방 놀이, 오징어 놀이, 나이먹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권(고누)두기, 일찌 맘대로, 가끔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 등등. 예전에는 청년들이 힘자랑을 했다는 상당히 큰 동그란 돌덩이 두 개도 놓여 있었는데 누가 집어 갔는지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사장나무와 일체를 이루는 놀이가 특히 어렵고 역동적이었습니다.
첫째는 나뭇가지 타기. 대부분의 마을들이 그렇듯이 한치의 사장나무도 두 그루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처량하게 외줄기만 남은 아랫 사장나무는 엄청나게 컸는데 줄기의 가운데 부분이 썩어서 파여 있었습니다. 그 파인 자리를 손으로 잡고 발로 디디면 어렵지 않게 나무 위로 올라갈 수가 있었습니다. 나무 위로 올라간 다음 거의 땅바닥까지 뻗은 가지들을 타고 저 아래 언덕까지 내려오는 겁니다.
나는 운동신경이 둔하고 겁도 많아서 그다지 내켜 하지 않는 놀이였지만 또래들이 모두 가지타기를 하는 와중에 혼자서만 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무서움을 꾹 참고 동참했습니다. 나중에 커가면서 보니 우리가 가장 많이 타고 놀았던 가지부터 말라 죽어갔습니다.
다음으로는 나무껍질 전쟁놀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오래되면 껍질이 거북등처럼 터서 벗겨집니다. 나무 주변에는 벗겨진 껍질 조각이 수북하고 또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기 직전의 껍질들은 나무에서 직접 벗겨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한편은 나무 위로 올라가고, 다른 한편은 땅위에 서서 서로 상대편을 향해 나무껍질을 던지며 전쟁을 하는 겁니다.
가끔 얼굴 같은데 정통으로 나무껍질을 맞으면 상처가 생기고 피가 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게 쉽게 승패가 날 리 없습니다. 그래서 이 놀이가 시작되면 해가 저물어 “00야 깔 안 베고 뭐 하냐” 하는 등의 부모님들 호령 소리에 인원이 많이 빠져나갈 때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이런 놀이를 보더라도 사람의 본성 중에는 호전성이 상당히 강하게 내재되어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이 사장나무 두 그루의 잎들이 얼마나 무성했느냐 하면, 여름철 사장나무 아래 누워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이 한 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소나기가 어느 정도 쏟아져도 사장나무 아래 있으면 비 한 방울 맞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맨 위의 잎이 비를 받아 그 아래 잎들로 전달하는 과정이 반복되어 결국 빗방울을 나무 바깥으로 받아내 주었던 것이죠.
이렇게 한치 사람들의 삶과 함께했던 사장나무였는데 참으로 신기하고 가슴이 아픈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마을에서 이사 가는 집이 늘어 인구가 점점 줄어들어 가면서 사장나무도 차츰차츰 가지가 말라 죽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별히 변한 환경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고 오히려 아이들이 귀찮게 할 일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무는 점점 말라 죽어갔습니다.
20대 무렵 한여름에 사장나무 아래 누워서 보면 잎들이 뻥 뚫려 하늘이 보일 정도로 예전의 모습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해 본 생각이 ‘이 사장나무는 마을 사람들과 서로 기운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모양이로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2003년도이던가요? 무시무시한 태풍 ‘매미’가 지나가고 나서 아랫 사장나무의 절반이 밑동까지 쩍 갈라져서 쓰러져 버린 것입니다. 그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에 한치 집에 갔다가 사장나무 반쪽이 넘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만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습니다.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허전했습니다.
정확한 시기의 기억은 없지만 그일 얼마 후 윗 사장나무도 완전히 말라 죽었습니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윗 사장나무와 초라하게 절반만 남은 밑줄기에 겨우 가지 몇 개만 남아 있는 아랫 사장나무…. 지금은 한치의 사장에 멋진 정자가 세워져 있지만 예전의 무성했던 사장나무의 그 운치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마을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영 사라지고 없다는 생경한 풍경과 느낌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정감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저의 시골에도 동네 어귀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지요
당산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쉬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창시절 음악 시간에 배웠던 가곡이 떠 오릅니다.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베혀지고 없구려…어찌나 장엄하면서도 쓸쓸한 곡조였던지 지금도 가슴에 남아 가끔씩 불러보곤 합니다. 문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수명(樹命)과 수명(壽命)을 생각해 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