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하거나 이치에 닿지 않는 엉뚱하고 쓸데없는 말을 흔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합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어디서 유래했나 하고 인터넷을 뒤져 보았더니 대략 세 가지 견해가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춘궁기에 봉당에 매달아둔 볍씨까지 누가 훔쳐 먹은 일이 발생했는데 주인이 굳이 범인을 색출하지 않고서 “씨나락은 귀신이 까먹었다”고 결론을 내린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 둘째는 튼실한 볍씨 종자를 파종했는데 발아가 되지 않는 종자들이 많은 경우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었나?” 어이없어 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 셋째는 무당이 접신해서 신들린 춤을 추는 춤사위와 함께 무당의 입을 통해 나오는 혼령의 원을 서글픈 가락으로 뽑아내던 ‘귀신 시나위 가락’에서 유래했다는 설 등입니다.
각설하고 한치 같은 산중 마을에 귀신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가 빠질 리 없을 터입니다.
어렸을 때 종증조부님(이하 할아버지)이 생존해 계셨는데 할아버지의 손등에 백반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백반증이 도깨비와 씨름을 하고 나서 생겼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전설의 유래는 대략 이렇습니다.
할아버지가 비교적 젊으셨을 적에 장에 가서 약주도 한잔 잡수고 고기근도 좀 뜨고 해서 저물 무렵 한치로 돌아오시는데 지금의 조양저수지 옆길에서 기역자로 꺾이는 곳에서 도깨비를 만나 씨름을 했더랍니다. 다행히 큰 해를 입지 않고 그럭저럭 귀가했는데 그 뒤로 손등에 백반증이 생겼다는 겁니다. 그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가 잃어버린 짐을 찾으러 도깨비 만난 자리에 다시 가 보았더니 ‘몽당빗자루 하나만 떡 하나 떨어져 있었다’는 식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어렸을 때 누누이 들은 이야기는 도깨비가 나타나서 씨름을 하자고 덤비면 반드시 도깨비의 왼 다리를 걸어야 이기는 법이지 잘못해서 도깨비의 오른 다리를 걸면 도깨비에게 지고 큰 낭패를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 말을 꼭 명심하며 살았는데 이날까지 도깨비가 나타나서 씨름을 하자고 덤빈 일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도깨비를 만났다던 그 부근이 아주 요상한 곳이었는지 그 주변에서 귀신이나 헛것을 보았다는 사례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치 사람들은 그 장소를 꺼려했고 나 또한 그 장소를 지날 때면 늘 찜찜하고 마음을 졸이곤 했습니다.

그 요상한 장소에서 생긴 조양 아짐들의 웃기는 일화 하나. 저수지 옆 집이 있는 곳 조금 위에는 조양에 사는 분의 밭이 있었고 그 밭의 윗머리에 밭 주인 어머니의 산소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부근에서 산소 주인의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답니다.
어느 해 조양 아짐들 몇 분이서 그 밭을 매었는데 일을 다 마치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다고 합니다. 평소 입담이 좋은 아짐 한 분이 귀갓길에 장난 좀 쳐볼 요량으로 그 밭을 뒤돌아보고 나서는 “오매 00댁 내려오네” 이랬답니다. 그 산소의 주인이 귀신으로 나타났다는 거짓말을 재미 삼아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다른 아짐들이 혼비백산해서 “오매, 오매” 하면서 막 뛰어가 버리니 정작 그 농담을 했던 아짐도 겁이 더럭 나서 함께 뛰어가려다가 그만 발이 돌부리에 걸려 털푸덕 쓰러졌는데 누구 하나 뒤도 안 돌아보고 내빼더랍니다. 그 아짐 사람 살리라고 악을 쓰면서 겨우 뒤따라갔다고 합니다.
조양과 한치의 중간지점을 ‘반튼거리’(혹은 ‘반틈거리’)라고 불렀는데 또 그 자리에서는 밤에 아기 울음소리가 난다고 해서 무서워했던 곳입니다. 그 부근에서 아기 울음소리를 몇 차례씩이나 들었다고 주장하는 또래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가끔 저물녘에 혼자 가게 되면 아닌 게 아니라 무슨 요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산짐승이나 산새들의 희미한 울음소리에 무서움증이 더해져서 아기 울음소리로도 들리고 무슨 귀신 비슷한 소리로도 들리는 등 마음이 지어낸 소리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때 가을운동회를 앞둔 며칠 동안은 운동회 연습을 마치고 나면 날이 저물어서야 하교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아이들, 특히 여학생들이 모두 똘똘 뭉쳐가면서 서로 가운데 자리에 끼어 가려고 경쟁을 하게 됩니다. 이때 꼭 등장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귀신은 맨 가운데 있는 사람을 파먹는다더라” 하는 말….
그래도 여전히 서로 가운데 끼어 가려고 야단입니다. 그러다가 누가 왈칵 무서움증을 느끼고 뜀박질이라도 시작하게 되면 봇물이 터지듯 일시에 모두들 ‘와’ 하면서 뛰어가게 되는데 애써 대범한 척하며 무리에 끼지 않던 남자애들조차도 그런 분위기가 생기면 도리 없이 ‘걸음아 날 살려라’가 됩니다. 그중 발걸음이 늦어 뒤처지는 애들은 자연 무서움에 눈물을 흘리게 되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귀가하는 일도 있게 됩니다.
초등학교 때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밤중에 산길을 혼자 걸을 일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맨몸보다도 책보를 등 뒤에 둘러매면 조금 더 안정감이 생겨 무서움증이 덜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책보 속의 빈 도시락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신경이 쓰이면서 오히려 무서움증을 배가시키는 경우도 있으니 책보는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밤중의 길동무로 최고는 지게입니다. 지게를 지고 걸으면 등 뒤가 보호되는 느낌이 있는데 거의 사람 한 명과 동행하는 것 정도의 든든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학년 때 조양 살던 동무 하나가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당일 학교가 파하기 전에 그 소식이 전해졌는데 하교 시에 담임 선생님이 나와 조양 애들에게 “그 집 한번 들렀다 가라”고 했습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담임 선생님 명을 거역할 정도의 배포는 없어서 거기 들렀습니다. 그 애 할머니가 우리가 들어서는 것을 보시더니 “아이고 내 봉알아” 하면서 덮어 놓았던 거적을 들치는데 반바지 입은 하반신의 퍼런 시반을 보고 말았습니다. 영 언짢은 상태로 귀가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이틀 후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침 등굣길에 마을의 후배 녀석이 “저 위에 00 묻더라” 하고 위치를 알려준 것입니다. 몰랐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을 알아서 병이 된 경우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난 뒤로는 혼자 그 앞을 지나게 되면 녀석이 꼭 제 이름을 부르면서 따라올 것만 같아서 그 주변은 죽어라고 뛰어서 통과했습니다. 한번 생긴 무서움증은 쉬이 가시지 않는 법인지 6학년 때뿐만 아니라 중, 고, 대학 시절까지 내내 저물어서 한치 집에 가게 되면 늘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조양저수지가 생길 때 그 자리의 흔적도 없어지면서 그 무서움증도 차츰 덜해진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귀신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는 새로 생기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그런 시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보니 일부의 사람들, 특히 큰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일부 사람들의 잘못된 심성 속에 여전히 귀신과 도깨비는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요망한 귀신이 씐 상태에서 큰 힘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차라리 그냥 은근히 무섭기만 하고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았던 그 옛날의 귀신이나 도깨비 이야기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편 이야기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ㅎㅎ 웃다가
어리시절 길 옆 소나무 숲을 지나갈 때면 미리 숨고르기를 하고 뛰어 갔어야 했던 때를 상기 하기도..애고 무서웠죠!
그 시절 시골은 비슷한 상황이었나 봐요~~
선생님들이 한치에 사는 저학년(1~3학년)생들은 귀가시간 고려해서 늦게까지 운동회 연습을 안시키고 특별히일찍 귀가시켰지요.
그런데도 4학년이상 고학년 형이나 누나를 기다리며 놀다가 결국 캄캄한 밤에 같이 귀가하다 귀신공포에 사로잡혔던거 같습니다.
결국 다같이 뛰게 되면 걸음이 늦는 저학년생들은 자기 형이나 언니를 부르면서 울고불고 울음바다가 되어 뒤따라 뛰어갔었지요.ㅎ
문 작가님의 글은 실타래가 풀리듯 자연스럽고 유쾌합니다. 잊었던, 아니 잊혀질 뻔 했던 어린시절 귀신과 도깨비 이야기를 다시 들으니 오싹해 집니다.ㅎㅎ
삶의 통찰을 담은 은근히 좋은 글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