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7월 24, 2024
연재한치이야기 16 – 산간벽지 마을 무상급식 빵

한치이야기 16 – 산간벽지 마을 무상급식 빵

청소년기까지 과자나 빵을 그렇게나 좋아했건만 마음껏 사 먹을 여유가 없었는데, 정작 과자나 빵 정도는 사 먹을 수 있게 되니 이제 과자나 빵이 잘 당기지 않습니다. 인생의 아이러니인데 이 또한 나이 들어가는 신호일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바게트라는 막대기 빵은 아직도 가끔 사 먹습니다. 이 바게트에서는 ‘산간벽지(山間僻地) 마을 무상급식 빵’과 비슷한 맛과 향이 나기 때문에 지금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산간벽지 마을 무상급식 빵’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한치는 산간벽지 마을이라고 하여 학교에서 이 빵을 무상으로 배급받아 먹었습니다. 이 빵은 속에 팥소(앙꼬)도 없고 비닐봉지에도 싸여 있지 않았습니다.

70년대에 어느 산골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했다는 분이 자신의 블로그에 산간벽지 마을 무상급식 빵을 직접 배급했던 일화를 적으면서 ‘이 빵은 여름철에는 하루만 지나도 먹을 수 없을 만큼 방부제도 없는 좋은 빵이지만, 맛으로는 별로’라는 내용을 써놓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맛으로는 별로’라는 이분의 평가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8~9살 때의 기억에 ‘모든 빵은 무조건 다 맛있는 것’이지 ‘맛이 없는 빵’이라는 표현은 감히 성립될 수 없는 말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유치서교 관할에서 ‘한치’와 ‘덕리’ 정도가 진정한 의미의 산간벽지 마을에 해당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학교와 마을 사이의 거리만을 단순하게 따지기로 하면 장주마을이나 학송마을도 학교에서 10리 길이 넉넉하게 되는 먼 곳이지만 장주나 학송은 신작로 옆에 있었으니 산간벽지 마을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반월리 장주마을 전경 | 임성동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반월리 장주마을 전경 | 임성동

유치서교는 건물 왼쪽에 1학년 교실이 있었습니다. 오전 중에 빵 차가 들어오면 건물 왼쪽 통로를 통해 뒤쪽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수업 중에 빵 차가 들어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빵 차가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지면 마치 고소한 빵 냄새가 교실 안에 풍기기라도 한 것처럼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하고, 이제 선생님 말씀은 안중에도 없고 종이 치기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빵 차에는 산간벽지 마을 무상급식 빵 외에 앙꼬가 든 조금 고급스러운 종류의 빵도 있었는데 이것은 일부 학생들이 돈을 내고 사 먹는 빵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3학년에 올라가면서 이 무상급식 빵이 없어지고 건빵이 대용으로 지급되었습니다. 아마도 무상급식 빵의 변질 등 보관상의 문제로 취해진 조치였지 싶습니다. 건빵 역시 산간벽지 마을 무상급식용이었을 것 같은데 담임선생님은 이뻐하거나 마음에 드는 학생들에게 제 멋대로 이 건빵을 나눠 주었던 것 같습니다.

고학년에 올라갔을 무렵 신풍 가게에서 ‘보름달’이라는 카스텔라 종류의 빵을 팔았습니다. 겉은 달콤하고 향기롭고 부드러우며 속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맛 좋은 크림 종류가 들어 있어서 입에 넣으면 씹을 것도 없이 녹아내리는 그런 고급 빵이었는데 가격은 50원으로 꽤 비쌌습니다.

어느 겨울 무렵 학교가 파한 뒤에 너무나 추워서 신풍 가게 앞에서 바람을 좀 피하고 있는데, 가게 안에서 어떤 사람이 이 보름달을 먹고 있었습니다. 춥고 배고픈 그 순간, 온 세상을 다 바꾸고서라도 한번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집에 가서도 그 갈망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밥을 배불리 먹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빵 사 먹겠다고 용돈을 달라고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보니 결국은 그 욕망을 참지 못하고 아버지 동전 지갑에서 슬쩍 50원을 훔쳐서 그다음 날 보름달을 사 먹고 말았습니다. 하루 종일 죄의식에 시달렸지만 묘하게도 먹고 싶은 것을 기어이 먹고 말았다는 말도 안 되는 뿌듯한 감정도 일었습니다.

집에 가서 아버지 눈치를 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으셨습니다. 이건 분명 50원이 사라진 사실을 모르고 계신 분의 태도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제 간이 커져서 서너 차례 더 그 짓을 하게 되었는데, 하루하루 가중되는 중압감과 죄의식을 이기지 못해 며칠 만에 그만두기는 했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도 가끔 궁금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때 지갑에서 50원이 사라진 사실을 정말 모르셨을까? 혹 알고도 눈감아주셨을까? 만일 알고도 눈감아 주셨다면 아들이 스스로 그만두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일까?

그러면서도 막상 언제까지도 여쭤보지는 못했는데, 이제 아버지도 영 가시고 말았으니 이생의 끝날까지 그 수수께끼는 혼자 간직할 몫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문득 아버님 생각이 나는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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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보름달 빵 넘 맛있었지요! 초등학교 교문 근처에 문구점이 있었는데 소소하지만 정말 먹고싶은 사탕과 꽈배기가 늘 통에 담겨 있었지요. 마음껏 사먹는 친구들이 눈물나게 부러웠죠.
    문 송담 작가님은 어린 시절을 어쩜 그리도 세세히 기억하시고 이야기로 풀어내시는지 감탄이 나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2. 옥수수빵 최고였죠!
    토요일은 2개씩 받아서 집에 가져와 나누어 먹기도 했으니~~~그런 빵 지금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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