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7월 24, 2024
연재한치이야기 15 - 엿장수 마음대로

한치이야기 15 – 엿장수 마음대로

일정한 기준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엿장수 마음대로’라고 표현하니, 그런 평가를 받는다면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엿장수는 제 맘대로였을까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정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마을에 들어오던 여러 장수들 중 엿장수는 우리에게 단연 최고의 인기였습니다. 늘 당분이 부족하였고 자연에서 나는 것 외에 딱히 군것질거리가 없던 시절에 엿은 최고의 군것질거리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엿장수가 엿가위를 철컥철컥 울리며 마을로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마음에서 절로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판엿이 주종이었습니다. 고물을 넘겨받은 엿장수가 판엿 위에 끌을 대고 철컹거리던 엿가위를 이용하여 신속하고도 그림 같은 솜씨로 두께도 일정하게 엿을 탁탁 떼어내는 장면은 가히 볼만하였습니다. 엿을 떼어내다가 작은 자투리라도 생기면 원래는 고물 가져온 사람에게 주는 것이 맞겠지만 가끔은 주위에 빙 둘러서서 침을 흘리고 있는 애 중 정말이지 엿장수 자기 맘 내키는 대로 아무나 골라서 한 입 내어주기도 했습니다.

거의 모든 가정은 엿 바꿔 먹으려고 고물들을 모아놓기 마련인데 엿장수가 받는 품목도 깨진 놋그릇이나 낫 동강, 알루미늄 따위의 철과 비철금속류, 웬만한 고무류, 비닐류, 하얀 고무신 등 퍽 많았습니다. 단 검정 고무신은 받지 않았는데 아마 재생하기가 힘든 재질이었던가 봅니다.

아주 드물지만 고물이 없을 때 아이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한 어른들이 곡식 종류로 엿을 바꾸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금 더 세월이 흘러 나중에 가락엿이 들어올 때부터는 판엿에서 엿 떼어내는 재미도 없어졌고 마을의 가구수가 크게 줄어서 엿장수에게 줄 고물의 양도 예전보다 적어졌으며 엿장수들이 가져가는 품목도 훨씬 제한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엿장수와 거래할 때면 억울한 경우도 생깁니다. 엿장수는 대개 우리 집 앞의 회차장에 엿수레를 멈춰놓고서 거래하는 수가 많으므로 내 형제자매들이 일 순위 손님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내 형제자매들은 그다지 주변머리가 없었는지 고물을 가져다주고서 그저 엿장수가 주는 대로만 받고 말 뿐 조금 더 달라는 둥 그런 소리를 못 했습니다.

나중에 위뜸 애들이 내려와서 엿을 바꿔 가는 것을 보면 우리보다 적은 물건을 가지고 와서 더 많은 엿을 받아 가는 일도 있고, 더 달라고 해서 더 받아 가는 일도 있었는데 참 억울하고 피해의식이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속으로는 불만이었지만 입 밖으로는 감히 내뱉지 못한 소심파라서, 그저 엿수레 주위에서 침 흘리고 있다가 아주 운 좋으면 자투리 엿이라도 한 입 얻어먹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흔치는 않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즉 우리보다 훨씬 많은 물건을 가지고 내려온 위뜸 애들에게 엿을 더 적게 주는 경우 말입니다. 아마 엿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는데 나중에 물건이 생각보다 점점 많아지면 어쩔 수 없이 엿을 줄여서 주었지 싶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은 여러 사람의 경험에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엿장수가 들어오고 난 후 아이들이 부모님으로부터 매타작을 당하거나 엿장수가 어른들로부터 항의를 받고 아이들로부터 받았던 물건을 어른들에게 도로 내주는 경우도 가끔 있었습니다.

매타작을 당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멀쩡한 물건을 어른들 몰래 내주고 엿을 바꾸어 먹었는데 이미 엿장수가 떠난 후라서 물건도 찾지 못하는 때입니다. 엿을 바꾼 고물은 공식적으로 모아놓은 것으로 문제가 없지만 엿을 바꾸고 나서 다른 형제자매들의 몫을 남겨 놓지 않거나 조금만 남겨놓고 홀라당 먹어 치웠을 경우도 매타작의 이유가 됩니다. 나도 후자의 경우로 어머니로부터 매를 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질리도록 엿을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원 성취를 못했던 탓에 지금도 엿이 눈에 보이면 닥치는 대로 주워먹습니다. 언젠가 창평엿을 사다가 아무 생각 없이 두 봉지를 다 먹었더니 속이 다려서 혼난 일도 있습니다.

이제 관광지나 고속도로 휴게소 아니면 보통의 마을에서 엿가위 철컥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세상입니다. 옛날 같으면 온 식구가 질리게 엿을 바꿔 먹었을 만큼의 많은 고물들도 재활용 쓰레기라고 부르며 버리는 세상이니 그만큼 살기가 좋아졌다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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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

  1. 어린 시절 엿을 먹다가 어금니가 엿에 붙어나왔던 추억이 떠 오릅니다. 입안 가득 엿을 물고 침까지 흘려가며 더 바랄 게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지요. 멀리서 철컥철컥 가위질 소리에 헌 고무신있나 헛간 속을 뒤졌던 기억도 납니다.
    가끔 로컬 푸드에 갈때면 냉장고 속 엿봉지에 눈길이 머무는 것도 그때의 맛이 잊혀지지 않은 까닭이겠지요. 문 작가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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