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7월 24, 2024
연재한치이야기 14 – 등잔 밑이 어둡다

한치이야기 14 – 등잔 밑이 어둡다

현대문명이 전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어, 전기 없이 존속을 기대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한치 같은 산골 마을조차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4학년 때인 1976년 가을, 비로소 한치에도 전기가 들어왔는데 이후 생활의 대부분을 전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불 켜는 일, 텔레비전, 컴퓨터, 전기밥솥, 선풍기, 청소기, 핸드폰 충전, 보일러, 먹는 물은 물론이고 버섯균을 심기 위해 나무에 구멍 뚫는 일, 갈수기에 물 퍼올리는 일 등 농사일까지도 전기에 의존하고 있으니 이제 전기 없으면 생존에 위협을 받을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40년 사이에 벌어진 변화입니다.

한치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 방에서는 등잔불(호롱불)을 썼고 부엌에서는 남포등을 썼습니다. 남포는 영어권의 ‘램프’가 변화된 말이라고 하지요. 부엌에서 사용되던 남포등은 어른들이 마실 가실 때나 야간에 바깥일을 할 때도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후레쉬(플래시)가 보편화되면서 남포등은 다시 부엌용으로만 사용되었습니다. 등잔불과 남포등에는 석유를 썼습니다. 그전에는 콩기름을 쓴 적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석유를 사용했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시골집 남포등 | 문송담
시골집 남포등 | 문송담

한치에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 조양에는 이미 전기가 들어와 있었습니다. 어느 해 조양 친척 집에 놀러 갔다가 전구가 끼워져 있지 않던 소켓이 천정에서 늘어져 있는 게 신기해서 요리조리 만지며 놀던 중 무심코 손가락을 소켓 속으로 집어넣었다가 벼락치는 듯한 통증과 함께 순간적으로 온몸이 저리는 무시무시한 감전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전기를 무서워하고 전기 다루는 일은 되도록 피하는 형편입니다.

1976년 4학년 여름 무렵부터 조양에서 한치까지 전신주를 세우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이야 그런 작업도 건설기계로 후딱 해치워서 며칠이면 끝나겠지만, 그때는 순전히 인력으로만 그 일을 하다 보니 동원된 숫자도 많았고 시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동원된 인력이 장정 십수 명은 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분들은 보성 벌교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오래 지속된 전신주 공사 기간 그분들의 식사 대접을 온전히 마을에서 책임졌는데 매일 두 집씩 식사 당번이 정해졌습니다.

어느날 옆집과 우리 집이 함께 식사 당번이던 저녁때 어떤 분이 두 집의 울타리 중간에서 양측의 반찬을 이리 보고 저리 보며 한참을 고심하다가 겨우 우리집으로 와서 식사하는 것을 보고 우스웠던 적도 있습니다. 그분들이 잠자리를 어디서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마을회관과 다소 큰 집들의 사랑방에서 나누어 잤을 것 같습니다.

전기가 들어오고 나니 매캐한 석유 그을음 냄새를 맡아 가며 등잔 그림자를 피해서 책 읽고 숙제하던 풍경도 사라지고, “전기가 없으니 자식들이 많다”는 아랫동네 사람들의 비아냥 때문에 생겼던 열등감도 따라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등잔은 정전이 났을 때나 한 번씩 꺼내 사용하다가 차츰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면서 이 역시 어디론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현대 문명과 문물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우리 세대와 부모님 세대는 불과 몇십 년 사이에 근세기 이전 수백 년 동안 경험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빠른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빠른 변화가 과연 축복인지 아니면 지나친 속도감을 이기지 못해 재앙을 불러올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혹시나 재앙이 발생하면 등잔불 시절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야 가장 가까운 사실을 놓치곤 하는 현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에 불과하겠지만, 현실적인 등잔 밑은 말 그대로 진짜로 어둡습니다. 등잔 그림자 바깥쪽이라고 하여 그다지 환하지도 않습니다. 등잔불을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고 아득한 느낌입니다. 사람의 욕심으로 과도한 발전을 추구해 등잔불 시절로 되돌아가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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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

  1. 늦은 오후쯤 등잔 유리를 닦고 심지 돋우어 불을 켜는 것은 하루 일과 중 빼놓을 수 없었지요. 유리를 닦다 손을 벤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형제들이 여럿 있었는데 왜 나만 늘 등잔 유리를 닦았었을까요!
    문 작가님의 글을 읽고 그땐 몰랐지만 문득
    큰방, 작은방, 부엌, 마루 위 등 그 많던 등잔 유리를 닦느라 바빴던 어린 손이 참 수고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울퉁불퉁 매듭 굵은 손이 되었지만 그 수고가 고맙고 한편 안쓰러워 쓰다듬어 줍니다.
    문 작가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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