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12월 5, 2024
연재한치이야기 10 - 옹기장수의 바지게 짐

한치이야기 10 – 옹기장수의 바지게 짐

한치의 어른들은 영암장에 다녔던 일들을 유독 많이 말하셨습니다. 유치장이나 장흥장도 물론 이용했겠지만 영암장은 순전히 산을 몇 고개 넘어서 걸음만으로 나다녔던 장이기에 더 고생스러워서 늦게까지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 지도를 가지고 대충 목측해 보면 한치에서 장흥읍까지의 거리보다도 영암읍까지의 거리가 조금은 더 가까워 보입니다. 한치에서 장흥읍까지 20km쯤 되니까 도상 거리만으로는 한치에서 영암읍까지 20km는 못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전 한치 분들이 영암읍까지 걸어 다녔다는 실제 거리는 20km가 훨씬 넘었을 것입니다.

한치에서 영암읍으로 가려면 우선 국사봉 아래쪽 산을 2~3개쯤 넘어서 반월까지 갑니다. 정확하게는 반월 위쪽에 있었던 금곡(혹은 근곡)마을을 말하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마을이 없어지고 저수지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산을 넘으면 장주가 나오고, 장주에서 한대리까지 신작로를 따라갔다가 한대리에서 다시 산을 넘고 들판을 지나 영암읍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한대리는 영암군 금정면에 속할 것 같은데 생각과 달리 영암읍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한대리에 있던 학교도 ‘영암남초등학교’였습니다. 생각만 해도 아득합니다. 이런 식이면 대부분을 산길로 해서 왕복 100리 길이 너끈하게 걸렸을 것이니 새벽 일찍 출발해서 장을 보고 부지런히 돌아와도 저녁 어스름이 되곤 했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유치장, 장흥장이라고 해도 멀고 고생스럽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한치에서 조양까지는 4km쯤 되는데 원래는 개울가와 논둑을 따라 난 오솔길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72년 말에 겨우 신작로가 완성되어 이후 말 달구지도 다니고 나중에는 차도 다닐 수 있게 되었는데, 그 길을 걸어서 다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치 분들은 장에 가는 일을 최소화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뜨내기 장수들이 한치와 같은 산골 마을까지 돌면서 장사를 했을 것입니다.

나 어렸을 때까지도 생선 장수, 과일 장수들이 머리에 짐을 이고 한치까지 들어와서 장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장사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도 홀가분하게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한치 주민들은 대개 돈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드물어서 돈 대신 콩팥이나 보리쌀 등 곡식으로 그 값을 치르기 때문에 장사를 마치고 나갈 때는 들어올 때보다 더 무거운 짐을 이고 나가기 십상이었습니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 맨 아랫집이고, 또 일찍이 할머니가 혼자 되셨던 관계로 저물게 들어온 여자 장수들은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유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복숭아 장수가 잠을 자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잠잔 대가로 처진 과일 몇 개라도 내놓게 마련입니다.

어른들에게서 들은 말에 의하면 동네에 장사를 들어온 사람들 중 머리 짐 이고 들어온 장수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풍경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옹기장수를 말하는데 그 짐이 참으로 대단했다고 합니다. 옹기는 큰 옹기 속에 작은 옹기를 담아서 이동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형태 때문에 대개 다른 옹기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따로따로 한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어 짐의 부피가 어마어마하게 컸을 것이 짐작은 갑니다.

주로 큰 바지게에 옹기를 몇 겹으로 첩첩이 쌓은 후 지고 다녔다고 하는데 옹기장수가 옹기를 한 짐 가득 지고 비잣재를 넘어오는 모습이 가히 볼만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옹기장수의 바지게 짐을 잠깐 상상해 보았는데, 이미 지난 일이고 남의 일이지만 퍽이나 심란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바람이라도 심하게 불어서 넘어지기라도 했다면…. 아찔합니다.

한치 사람들만 고생하며 살았던 것이 아니라 불과 40~50여 년 전까지도 우리네 주변에는 참으로 신산(辛酸)의 세월을 살았던 분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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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

  1. 저 어렸을 때에도 옹기 장수가 찾아오곤 했더랬습니다. 마침 점심 때면 마루에 걸터앉아 함께 밥을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엄마는 옹기값으로 쌀을 주기도 하셨던 것 같습니다.
    문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눈물을 국물삼아 한 숟가락 밥을 삼켜야 했던,
    지난한 삶을 살다 가신 분들 덕분에 제가 이렇게 살고 있음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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